글로벌 거상(巨商) 신격호: 83엔으로 시작된 롯데 신화와 거장의 삶]
1. 경상도 시골 소년, 83엔을 쥐고 일본으로 향하다
1921년 경상남도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 가난한 농군의 5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신격호는 어린 시절부터 강한 승부욕과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농업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에서 양털을 깎고 농사를 지으며 살기엔 그의 야망이 너무나 컸습니다. 결국 1942년, 스물한 살의 청년 신격호는 단돈 83엔만을 주머니에 차고 큰 꿈을 품은 채 관부연락선을 타고 일본 도쿄로 건너갔습니다.
도쿄에 도착한 그는 와세다 고등공업학교 화학과(야간)에 입학해 낮에는 신문 배달, 우유 배달, 트럭 조수 등 온갖 고된 일을 하며 학비를 벌었습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확한 시간에 우유를 배달하는 그의 지독한 성실함과 신용에 감동한 일본인 투자자(하나미쓰)가 "사업을 해보라"며 6만 엔이라는 거금을 선뜻 투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첫 시련은 혹독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미군 폭격으로 공장이 두 번이나 잿더미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신격호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비누와 화장품을 만들어 빚을 모두 갚았고, 이때 얻은 "약속과 신용은 목숨처럼 지킨다"는 철학은 훗날 롯데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2. 문학 소년의 감성, '롯데(Lotte)'라는 이름의 탄생
전쟁이 끝난 후, 미군들이 들여온 '풍선껌'을 맛본 신격호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화학공학을 전공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는 직접 껌 베이스를 개발했고, 1948년 직원 10명과 함께 '(주)롯데'를 설립했습니다.
'롯데'라는 회사 이름에는 낭만적인 비화가 숨어있습니다. 문학을 무척 사랑했던 신격호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여주인공 '샤를롯테(Charlotte)'에 깊이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열정적이고 친근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마음을 담아 회사 이름을 '롯데'로 지었던 것입니다.
품질 좋은 풍선껌과 감성적인 마케팅으로 일본 껌 시장을 정복한 롯데는 이후 초콜릿, 캔디, 비스킷 등 제과업 전반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일본 내 거대 기업으로 도약했습니다.
3. 사실로 밝혀진 인생과 사랑, 그리고 가족사
신격호 회장의 삶에는 세 명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제외하고, 공식 기록으로 입증된 세 여인과의 인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 첫 번째 부인 (노순화 여사):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인 1940년, 고향에서 결혼한 첫 부인입니다. 신 회장이 일본에서 고군분투하던 시절, 1942년 딸 신영자(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를 낳았으나 안타깝게도 1951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 회장은 홀로 남겨진 장녀 신영자 이사장을 평생 각별히 챙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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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부인 (시게미쓰 하츠코 여사): 일본에서 사업 기반을 다지던 1952년 결혼했습니다. 롯데그룹 경영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장남 신동주(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와 차남 신동빈(현 롯데그룹 회장) 형제를 낳았습니다. (※ 한때 일제 전범 가문의 조카딸이라는 소문이 돌았으나 이는 사실무근이며, 일본의 평범한 가문 출신으로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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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번째 인연 (서미경 씨): 1970년대 미스 롯데 선발대회 출신의 배우 서미경 씨와의 인연으로, 둘 사이에 딸 신유미 씨가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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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국(한국)으로의 귀환과 글로벌 롯데의 완성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자, 신격호 회장은 일본에서 모은 자본과 노하우를 들고 조국 대한민국으로 돌연 귀국했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정유나 제철 사업을 권유했지만, 그는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관광·유통 산업을 키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 유통·관광 대혁명 (롯데호텔과 백화점): 1970년대 소공동에 동양 최대 규모의 롯데호텔과 백화점을 건설했습니다. 당시 "포탄이 떨어지면 어쩌려고 저렇게 높이 짓느냐"는 반대가 거셌지만, 신 회장은 외국 관광객을 유치해 외화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 (롯데월드): 1989년 잠실에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인 '롯데월드'를 개장하여 한국 관광 산업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 숙원 사업의 완결 (롯데월드타워): "세계적인 도시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초고층 빌딩이 있어야 한다"는 그의 꿈은 2017년, 123층 높이(555m)의 롯데월드타워 완공으로 마침내 결실을 보았습니다.
제과로 시작한 롯데는 유통, 호텔, 석유화학(롯데케미칼), 건설, 금융 등으로 사업을 대거 확장하며 대한민국 재계 5위, 글로벌 유통·관광 대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5. 거인이 남긴 유산
신격호 회장은 생전 1년의 반은 한국, 반은 일본에 머무는 '셔틀 경영'을 이어가며 평생 현장을 누볐습니다. 거동이 불편해진 90대 나이에도 작업복을 입고 백화점 매장 바닥의 청결 상태까지 직접 점검하던 철저한 현장주의자였습니다.
비록 말년에 자식 간의 경영권 분쟁으로 마음고생을 겪기도 했으나, 2020년 향년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가 보여준 "거인의 개척 정신"은 수많은 후배 기업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거창한 조건이나 환경을 탓하지 마라. 아무것도 없어도, 신용과 열정만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
단돈 83엔의 알몸으로 건너가 한·일 양국에 거대 기업 제국을 건설한 신격호 회장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 산업사가 낳은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비하인드 스토리 이 영상은 신격호 명예회장이 고향 마을 주민들과 나눈 인간적인 교류와 그의 숨겨진 삶의 일화를 통해, 기업가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